암 진단을 받은 후, 저는 뜨개질에 온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암 투병 생활을 시작했을 때, 암과 계속 싸우기 위해 몇 가지 일을 했습니다. 일기장에 제 감정을 적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다른 암 생존자들(진단의 순간부터 “생존자”입니다)과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단지 침대에서 일어나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일지라도, 저는 가능한 한 활동적으로 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제 목숨을 구한 건 뜨개질이였어요.
힘든 화학 요법과 병원 치료를 받는 몇 달 동안 나는 모자 다섯 개, 두건, 스카프를 완성했습니다. 스웨터 두 벌과 양말 한 켤레는 시작은 했지만 끝내지는 못했습니다. 뜨개질은 제 삶의 목적을 주었고 암과 싸우게 했습니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을 표시하는 나의 방법이었고, 대부분 불안과 분노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습니다.
뜨개질은 깨어 있을 때마다 하는 일의 대부분이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뜨개질을 엄청 빨리 할 수 있다면 암 진행률을 앞지를 수 있다는 믿음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실을 많이 사고, 많은 프로젝트를 계획한다면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끝내야 할 스웨터가 있으므로, 성 베드로가 날 데려가지 않을거라고!
화학 요법과 다른 치료들을 할 땐 시간은 끔찍하게 느리게 흘렀고, 뜨개질을 할 땐 시간이 약간 더 빠르게 지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가끔씩 찾아오는 고통 없는 이른 시간에 깨어나 하루가 시작될 때까지 뜨개질만 했습니다. 링거를 맞으며 병원에 누워있을 때도 단순히 암에서 살아남는 것보다 더 생산적인 무언가를 만들곤 했습니다.
상태가 좋은 날은 끝없이 뜨개질을 하는 날이 되었고, 나쁜 날은 얼마나 떴는지 길이가 아닌 콧수를 셌습니다. 실을 감아 바늘을 찌르는 것이 저의 묵주가 되었고, 저만의 기도문이 되었습니다. 또한 뜨개질의 리듬은 저를 진정시켜줄 수 있는 전투 곡이 되었습니다.
뜨개질을 하는 동안 저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살필 수 있었습니다. 뜨개질과 우는 걸 동시에 하는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저는 뜨개질을 했습니다. 나의 세상이 갑자기 추하고 화가 났을 때 뜨개질로 그 안에 색과 아름다움을 부여했습니다. 즐거움을 부여하는 것이 세상을 다스리는 저만의 방법이었습니다.
뜨개질에 대한 열정 또한 희망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뜨개질할 것이 많아서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계속 받았습니다. 암은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세상에 아름다움을 가져다주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뜨개질을 하는 사람이며, 뭐든 할 수 있어요.
“바네사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사는 무술가이자 공예가이자 블로거입니다. 그녀는 뜨개질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생존에 필요한 내부 장기를 봉제 인형으로 만드는 것으로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종격투기와 공예에서 살아남은 그녀의 모험담을 더 읽어 보실 수 있을 겁니다.”